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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사건
둘째 아이가 그렇게 물었다. 단순한 질문 같았지만, 사실은 면접 준비를 위한 진지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날 아빠의 정기검사를 위해 전라도와 서울을 오가며 이틀을 다 써버렸고(버스-고속버스-시외버스-기차-지하철-기차-버스), 겨우 숨 좀 쉬어보려고 나간 학부모 모임(간단한 수다) 후 간단한 식사 한 끼를 하고 지친 몸으로 먼저 들어온 상태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은 버퍼링 중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버퍼링.
그런 내 앞에서 둘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거 상처야.” 그리고 퉁명스럽게 내 앞에서 돌아섰다. 사건은 그렇게 터졌다.
💧 2. 새빛맘의 감정
나는 이과를 전공했고, 약이나 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있었다.
그래서 육체적인 아픔에는 빠르게 반응했고, 첫째의 불안, 예민함, 공황에도 전력을 다해 대응해 왔다.
하지만 정신과적인 문제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성격적인 문제라고 여겼지만, 그건 그저 겉핥기에 불과했다. 불안, 공황, 우울 같은 감정의 덩어리 속에 갇힌 아이를 마주했을 때, 엄마인 나는 놀라고 당황했고, 동시에 무력해졌다.
그건 정말 빙산 같았다. 수면 위로 드러난 건 단지 일부일 뿐, 그 아래엔 너무나 거대한 것들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녹아야만 하는 빙산’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것이 조금씩 녹아가기를 바란다. 아니, 어쩌면 내가 정신없던 사이에 조금씩이 아니라, 어느새 꽤 많이 녹아내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니까, 나는 버티고, 애쓰고, 매일같이 마음을 다해 노력했다. 둘째를 등교시키고 다시 내가 출근하는 차 안에서 (운전전대를 잡는 시간만 1시간 30분이 훌쩍 넘는다. 아침부터 난 지치는 것인지도) 그래도 무튼, 그렇게 그렇게 1년이 훌쩍 지나고, 첫째는 천천히 나아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고 버티기 끝판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천천히 나아짐’이라는 긴 여정의 뒤편엔, 늘 조용히 있던 둘째가 있었다.
둘째는 언제나 “괜찮은 아이”였고, 그래서 나는 그냥, ‘괜찮겠지’ 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 시선이 머물지 않는 자리에서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제, 나는 첫째에겐 “미안하다. 너의 그런 심리 상태를 내가 몰랐어. 앞으론 내 말도 더 조심해 볼게”라고 말하고,
둘째에겐 “미안해. 너한테 너무 당연한 걸 요구했구나. 내가 지치다 보니, 오히려 네게 위로받고 싶었나 봐.
너도 힘들었을 텐데…”라고 말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두 아이 모두에게 미안한 엄마가 되었다.
🧠 3. 심리·철학·사회적 통찰
1️⃣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속마음
우리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내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님 눈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혹시 가족 중에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이 ‘건강해 보이는 아이’는 스스로를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러면서 점점 자기 속마음을 감추고 어른스러운 척하거나 때로는 차갑게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자기 마음을 보호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부모님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려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벽을 쌓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겪는 조용한 어려움에 대해 우리 사회는 아직 충분히 주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특정 자녀에게 집중될 때, 그림자 속에 있는 다른 자녀의 감정은 쉽게 놓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아이의 감정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사람이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 아이에게 더 깊은 관심과 사랑을 쏟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와의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사랑을 주면서도 혹시 다른 아이에게 소홀하지는 않을까 하는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부모의 마음은 항상 모든 자녀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자녀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외로움을 느끼거나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면 아이의 마음속에 조용하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
3️⃣ 사회적 시선과 아이들의 결핍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에게는 따뜻한 시선과 동정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물론 중요한 관심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 아이의 형제자매들이 조용히 감내하는 결핍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다. 이 아이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어쩌면 더 많은 어려움을 속으로 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을 때, 옆에 있는 다른 형제자매의 감정은 쉽게 간과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부모님에게 더 큰 부담을 줄까 봐, 혹은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속으로만 삭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사랑과 관심을 갈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4️⃣ 균형 잡힌 사랑을 위한 이해
어떤 아이든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아이가 모든 면에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큰 문제가 없어 보이고 스스로 잘 해내는 아이일수록, 종종 ‘투명한 아이’가 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사실은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작은 격려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숙하거나 차가운 태도는 사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을 숨기는 방어 기제일 수 있다. 부모님은 모든 자녀에게 동일한 양의 관심을 줄 수는 없겠지만, 모든 자녀에게는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감정과 필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조용한 결핍'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
🌈 4. 이렇게 해보자
오늘, 나는 하나의 실수를 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둘째의 진심 어린 질문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둘째도 내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라는 걸.
그래서 다음부터는 ‘둘째니까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짧은 순간이라도 너의 말에 정말 집중해 보자고 다짐한다. "너도 엄마에게는 소중하고 귀한 아이야." 이런 말, 미루지 않고 자주 전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모두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기 위해 매일 조금씩 배우고 연습하는 중이다.
오늘도 다시 배우고, 반성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엄마다. 그리고 정말, 너희들을 많이 사랑해.
💡 오늘의 다짐 – 엄마가 해보려는 작은 실천들
🟢 1. 둘째만을 위한 시간 만들기
오늘 둘째 네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자.
대놓고 묻기보다는 은근히, 친근하게 다가가 보기. 캐묻는 건 피하고, 네가 해준 대답엔 진심을 담아 반응할게.
그걸 네가 느낄 수 있도록.
🔵 2. 칭찬은 구체적으로
“착하다”보다는 “그 힘든 문제 끝까지 해낸 거 멋지더라.” 이렇게 네가 실제로 해낸 행동을 눈여겨보고, 구체적으로 말해줄게.
그런 말들이 너한테 힘이 된다는 걸 이제는 잘 아니까.
🟣 3. 감정 먼저 읽어주기
힘들어 보일 때 “무슨 일 있니? 몸에 기운이 없어 보이네”처럼 일단 네 마음부터 공감하는 말을 먼저 해줄게.
사실은 네가 바라는 게 그거라는 걸, 이제 조금씩 느껴가고 있어.
🔴 4. “몰라” 속 마음 들여다보기
뭘 사줄까, 뭘 먹을까, 뭐 해줄까 물어도 늘 “몰라”라고 말하는 너.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복잡한 마음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예전엔 또 저러네 하고 기분이 상했지만, 이제는 잠깐 멈추고 기다려보려고 해. 엄마부터 먼저 얘기를 꺼내볼게.
네가 스스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