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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감상문 기록장 – 《파과》
📌 도서명: 파과
✍️ 저자: 구병모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줄거리 요약
《파과》는 60살이 넘은 여성 킬러 '조각'의 시선을 통해 노화, 외로움, 삶의 고단함, 그리고 인간다움의 회복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 소설입니다. 한때 ‘손톱’이라 불리며 청부살인의 세계에서 전설로 불렸던 조각은 어느새 퇴물 취급을 받는 나이가 되었고, 몸과 기억은 서서히 예전의 민첩함을 잃어갑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버려진 늙은 개를 키우게 되고,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을 읽으며 타인에 대한 감정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평생 지켜야 할 존재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조각의 마음에, 이제는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싹트는 것이죠.
소설은 ‘킬러’라는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도 노년기의 주체성과 섬세한 감정을 깊이 있게 포착합니다. 조각은 자신을 치료해 준 강 박사에게 호감을 품지만, 또 다른 킬러인 투우는 그녀의 감정을 비웃으며 강 박사의 딸을 납치합니다. 이에 조각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결단을 내리게 되고, 마지막 총격전에서는 액션 영화 같은 긴장감 속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향한 그녀의 선택이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작품 제목 ‘파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서지고 흠집 난 과일이라는 뜻이며, 다른 하나는 여자의 나이 16세,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구병모 작가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제목을 통해, 삶의 빛나는 순간이 결국 사라짐과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통찰을 전합니다. 조각이라는 인물은 그 상실의 순간에도 온기를 품으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내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파과》는 킬러라는 장르적 외피를 입고 있지만, 결국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한 응원이며, 상처 입고 부서진 존재들이 서로를 비추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액션과 서정, 냉소와 따뜻함이 교차하는 독특한 감동을 주며, 한국 소설에서 보기 드문 ‘여성-노인-킬러’라는 입체적인 서사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 느낀 점
《파과》를 읽고 나는 오랫동안 마음 한켠이 저릿했어요. 조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60세가 넘은 여성 킬러의 삶은 낯설면서도 깊은 공감으로 다가왔어요. 나이가 들어도, 사회는 여전히 인간의 쓸모를 냉정하게 재단하고, 늙은 존재들을 조용히 밀어내죠. 그런 세상 속에서 조각이 보여준 생존력, 그리고 점차 깨어나는 감정은 단순한 액션의 이야기를 넘어, 인생 전체를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조각이 개를 돌보고,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마음속에 사랑을 품는 그 변화는 ‘지켜야 할 존재’를 향한 인간 본연의 따뜻함을 일깨워주었어요. 특히 그녀가 마지막 작업을 앞두고 강 박사의 딸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건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서는, 인간은 삶의 끝에서도 여전히 감정과 윤리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이 작품을 읽으며 문득 아빠 생각이 났어요.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지게 될까 봐, 혹시 자신이 돌봐주지 못할까 봐 끝내 강아지를 들이지 않으셨던 모습. 그 마음속에는 누군가를 책임지지 못할까 봐, 사랑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상처가 될까 두려워하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 역시 아직 쉰도 되지 않았는데, 혈청 분리를 하다 노안으로 애를 먹는 날이 점점 늘어가고 있죠.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실감하면서, 나도 이제 점점 ‘쓸모없어지는 존재’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어요.
《파과》는 단순히 나이 든 여성 킬러라는 설정을 넘어, 우리 모두가 언젠가 ‘파과’ 임을 자각하고도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에요.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그 삶은 여전히 의미 있고 찬란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남았어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모든 순간, 그 속에는 찬란했던 과거의 파편과 오늘의 생존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어요.
노년, 여성, 킬러라는 경계를 허물며 인간의 감정과 존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파과》.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내 삶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정성껏 살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빛난다"는 말처럼요.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www.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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