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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감상문 기록장 – 《종의 기원》
📌 도서명: 종의 기원
✍️ 저자: 정유정
🏢 출판사: 은행나무
📖 줄거리 요약
《종의 기원》은 피 냄새에 깨어나는 청년 ‘유진’의 시선을 따라,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추적해 나가는 심리 스릴러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유진이 피범벅이 된 방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거실에는 끔찍하게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이 있고, 유진은 그 전날 밤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다. 그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피비린내는 발작의 전조 증상이고, 약을 끊은 유진은 자신이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음을 예감하게 된다.
16년 전 사고로 아버지와 형을 잃은 뒤, 유진은 정신과 의사인 이모에게서 ‘정체불명의 약’을 복용하게 된다. 약은 그의 충동을 억누르는 동시에, 삶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 자유와 생기를 되찾기 위해 종종 약을 끊고 외출하던 유진은, 이번엔 돌아온 집에서 살해된 어머니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하는 가운데, 유진은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 나간다.
소설은 짧은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유진의 내면은 복잡하고도 깊다. 그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며, 동시에 ‘악의 본질’에 대해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정유정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외부의 악'이 아닌, ‘내 안의 악’을 직면하게 한다. 《종의 기원》은 누가, 왜, 어떻게 죽였는가를 밝히는 추리극의 구조를 따르지만, 그 목적은 사건의 진상보다는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결국 유진은 자신이 저지른 일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며, 이 소설은 그 ‘기억의 되찾기’ 과정을 통해 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는가를 깊이 묻는다. 정유정은 “운명은 제 할 일을 잊지 않는다”는 말처럼,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은 언젠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종의 기원》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인간 존재의 뿌리와 진화심리학적 고찰까지 아우르는 작품이다.
💭 느낀 점
《종의 기원》을 읽고 난 후, 나는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깊고 오싹한 감정을 느꼈다. 이 소설의 진짜 무서움은 괴물 같은 존재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본성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 유진은 처음엔 특별히 무섭거나 악랄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고 조용한 모습이라서 더 무서웠다. 그의 내면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나는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고, “악은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있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유정 작가는 늘 인간의 내면, 특히 어둠의 결을 들여다보려 한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악'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탐구했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마침내 '악 그 자체'를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이었다. '나'라는 1인칭 시점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유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와 감정적으로 겹쳐지는 경험을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유진이 정신과 약을 스스로 끊었다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나도 요즘 관련된 약물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 대목이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특히 신경전달물질을 억제하여 중추신경계를 안정화시키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은 갑작스럽게 끊으면 금단 증상이나 감정 폭주 등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그런 약을 아무렇지 않게 끊고도 평온한 얼굴로 말하는 유진을 보며,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종의 기원》은 악의 탄생이 거창한 사건이나 특수한 인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환경, 억눌린 감정, 내면의 균열 등 일상적인 배경 속에서도 서서히 자라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특히 유진이 겪는 ‘기억나지 않는 공백’은,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인간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결국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윤리와 도덕, 그리고 공감 능력을 지켜야 할까? 정유정 작가는 이번에도 독자의 심장을 정조준하며,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섬뜩할 만큼 깊은 울림을 남긴다. 《종의 기원》은 분명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을, 결코 쉽게 잊히지 않을 작품이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www.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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