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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감상문 기록장 – 《향수》

📌 도서명: 향수
✍️ 저자: 정지용
🏢 출판사: 신원문화사 (2003년 11월)

📖 작품 해설

《향수》는 정지용 시인의 대표적인 서정시로,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이자 정서적 원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 내면의 순수를 향한 동경을 절절하게 담고 있다. 단순한 유년의 기억을 넘어,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그리운 것’에 대한 보편적 감정을 일깨운다.

정지용의 시는 언어적 조탁이 빼어나며, ‘맑고 깨끗한 이미지’와 ‘차분한 정조’가 특징이다. 《향수》에서는 청각, 후각, 시각 등이 풍부하게 동원되어, 고향 마을의 들판과 개울, 초가집과 아지랑이까지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감각적 시적 세계를 형성한다. 그 안에서 화자는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한다’기보다,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존재론적 회귀의 정서를 보인다.

특히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는 구절은 정지용 시의 백미로 손꼽히며, 어린 시절의 정경과 그 시절의 평온함이 하나의 ‘기억의 성소’처럼 표현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지금 여기’가 아닌 ‘잃어버린 시간’에 속한 것이기에, 시 전체는 그리움과 상실이라는 이중적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향수》는 단순한 고향 찬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과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 작품이다. 시 속의 ‘그곳’은 실제 공간이자 상징적 공간으로, 독자들에게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하게 만든다. 이처럼 《향수》는 시대를 초월한 울림과 보편적 공감을 품고 있어, 한국 현대시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 느낀 점

정지용의 시 《향수》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고향을 그리는 아름다운 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고 곱씹을수록,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상실과 회귀, 그리고 존재의 고요한 사색임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정말 고향일까? 아니면 그 시절의 나 자신일까? 시를 읽으며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열 살 무렵 시골(영암)을 떠나 광주로 올라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한참이 지나서야 시골집(영암)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엄마가 계실 때와 아빠 혼자 계실 때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이번엔 뭘 심으셨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시골집을 바라보았다면, 지금은 아빠 혼자 얼마나 애쓰셨을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이제는 농작물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보다, 아버지가 그것을 위해 무릎을 몇 번이나 꿇으셨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가 직접 수확한 작물들을 나는 애마에 한가득 싣고 돌아온다. 그렇게 차를 채워올 때면, 아버지 얼굴엔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진다. 농약도 거의 치지 않은 시골표 농작물들. 오빠와 내가 먹을 거라 더 정성껏 기르셨다. 하지만 오빠는 기차를 타야 하기에 가져갈 수 있는 양이 적다. 그래서 내가 차를 몰고 갈 때면 아버지는 유난히 기뻐하신다. "운전하느라 피곤하지?"라는 말도 잊은 채 말이다. 그렇게 얻은 수확물을 몇몇 집에 나눠주며 문득 든 생각. ‘내가 마당발이었다면, 전화 몇 통으로 손쉽게 나눌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살짝 스친다.

나는 도시에서 자란 세대다. 논과 밭, 개울과 초가집 같은 배경은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이 시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시가 말하는 ‘고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리운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따뜻한 사람들, 순수했던 순간들. 그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리움으로 남는다.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는 구절은 내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겼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풍경은,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사는 내게 삶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엔 시계도 없고, 경쟁도 없으며, 자연과 삶이 어우러지는 평화만이 존재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 그래서 이 시는 도피가 아닌 회복의 감정을 준다.

《향수》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잃었느냐”고. 그리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내 마음의 고향을 떠올려 본다. 그곳은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정서적 근원이다. 그리움은 아픔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음을 증명해 주는 감정임을 이 시를 통해 배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인생의 향수를 따라 걷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그곳에 다시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현실은 바뀌었지만, 내 안의 고향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으니까. 그런데 문득, 그 고향이 과연 ‘그 고향’일까. 내가 그리워하는 향수가 진짜 향수일까. 어쩌면 내가 찾는 고향은 외부의 장소가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현재를 살고 있기에, 나는 자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힐링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향수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서 회복하고 다독여야 하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직 나는 그 길 위에 있는 중이다. 나만의 향수, 나만의 고향을 찾기 위한 여정 말이다.

 

향수 정지용 책 표지 이미지

※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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